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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당신에게
글쓴이 │
김명옥
등록일 │
2004-02-06
조회수 │
6173
어젯밤에도 예외없이 잠을 설쳤습니다.
몸을 눕히고 눈은 감았지만 감은 눈꺼풀 위로 끊임없이 꿈인지 잡념인지가 밤새도록 오락가락했지요.
동짓달 매운 바람이 숭숭 뚫린 문틈으로 스며 들어와 방안을 한 바탕 휘돌아 나갔습니다.
끄~응. 뒤척이며 앓는 소리를 내던 당신이 본능처럼 손을 뻗어 내손을 잡았지요.
잠결에도 당신은 이불을 끌어당겨 꼭꼭 덮어주고 얼굴을 쓰다듬고
당신의 팔을 베고 누워 어둠속의 천정을 바라봅니다.
은빛 별이 하나 둘 내려와 이불깃에 앉습니다.
이 집에 처음 이사 오던 날 우리 아이들이 아빠 엄마을 위해 붙여주곤 간 그 별이지요.
아빠 엄마 힘내라고.
우리 희망을 잃지 말자면서...
돌이켜 보면 참 어렵고 힘든 나날이었씁니다.
22년전.. 당신을 처음 만난 건 제게는 사랑이었지만 우리 부모님께는 근심 덩어리였죠.
솜철도 채 가시지 않은 열아홉 어린 딸에게 나타난 아홉살이나 많은 당신이 우리 부모님께 반가울리가 없었죠,
뚜렷한 직장도 없고 집안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으며 칠날매의 맏아들에 시누이가 넷이나 되니 딸 가진 부모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몰랐습니다.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고 앓아 누운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하얀 면사포를 쓰던 날... 우리 부모님은 끝내 식장에 나타나지 않으셨고 철없던 저는 당신과 결혼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 하며 애써 눈물을 삼켰죠.
예물이라고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형부가 사준 전자 손목시계 하나뿐이었지만 당신은 매우 고마워하며 받아주었고 우리는 봉천동의 달동네 판자집에 월세을 얻어 소꿉놀이 같은 살림을 차렸죠.
가구점에서 배달을 하던 당신이 어느날 한 아름의 책 보따리를 들고 들어온 건 좀 더 반듯한 직장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다는 소박한 욕심 때문이었지요.
가구 모서리에 부딪혀 온 몸에 멍 자국이 가실날 없었고 손에는 늘 상처 투성이인채 낮에는 힘든 가구 배달을 하고 밤엔 전기값이 아쉬워 촛불을 밝혀놓고 쏟아지는 잠과 싸우며 공부한 끝에 대학 졸업자들도 힘들다는 대기업의 채용시험에 무사히 합격했을때는 마치 세상을 다 얻은듯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서른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고졸의 학력으로 그 시험을 통과한 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죠.
당신은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이었고 자존심이 되었으며 비로소 우리 부모님도 당신을 인정하고 사위로 받아들이셨지요.
그리고 십년 세월.... 그 사이에 우리에겐 두 아이가 태어났고 당신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요.
틈츰이 일본어 공부를 하면서 통관 업무며 수출입 업무에 관한 국어 대사전 분량의 책을 몇 달에 걸쳐 혼자 독파할 만큼 공부하고 노력한 것은 치열하고 냉정한 경쟁 조직 속에서 대졸 사원들에게 절대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 때문이었지요.
매일 새벽까지 책과 씨름하는 당신을 위해 아기를 울리지 말아야 했던 나는 늘 아기에 젖을 물린 상태로 손에서는 부업 일거리를 놓을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노력한 결과로 여덟번의 이사 끝에 꿈에 그리던 내 집 마련도 할 수 있었고 궁색했던 생활이 어느 정도 나아질 무렵 저승사자처럼 찾아온 구조조정.
십년을 하루같이 한 눈 한번 팔지 않고 몸바쳐 일했지만 당신은 정리 대상 영순위였고
고졸 학력이 영순위의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오토바이로 출퇴근하다가 팔이 부러지고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의 사고를 당하고도 깁스를 한채 회사에 나가 일했지만 그런 노력도 허사였고 매서운 그 칼날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져 운명처럼 순응을 하는 것 뿐이었죠.
처음으로 앞이 막막하다....라는 사실을 느낀 순간이었죠.
앞으로 닥쳐올 더 많은 막막함은 생각지도 못한채 말이죠.
몇 개월월의 방황기를 보내고 있을때 다가오던 한 줄기 희망의 빛.
죽마고우였던 당신의 고향 친구는 그 당시에 우리에게 "희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심한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던 형님과 중고등학교 대학교에 다니고 있던 네명의 동생들 학비에 대한 부담 때문에라도 당신의 방황기는 오래 갈수 없었고 이것 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죠.
그래서 함께 사업을 해 보자는 친구의 제안은 희망 그 자체였고 난관을 헤쳐나갈 돌파구가 되었지요.
퇴직금과 집을 담보로 받은 대출금으로 용산 전자 상가에 점포를 오픈 하던 날... 아이들은 이제 우리 아빠도 사장님 됐다며 좋아했고 흥분과 기대만큼 장사도 잘 되었지요. 그렇게 안정된 생활의 여유를 느낀 것이 한 사년이나 되었을까요?
어느날 갑자기 쑥대밭이 된 가게와 세간살이에 나붙던 붉은 딱지들. 검은 양복의 사내들과 그 무참히 짓밟아 오던 구둣발. 공포와 두려움의 험악했던 얼굴들.
악몽같기만 한 그 현실은 당신의 죽마고우가 우리에게 남기고 간 또 한 차례의 시련이었습니다.
사람 잘 믿는 당신은 아무 의심없이 금고에 인감도장을 보관했고 "친구"보다 가족에 가까웠던 그 친구는 당신의 필적과 인감을 도용해 은행, 카드 회사등에서 거액의 대출을 받아 챙기고는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휴우........
지난 시간을 되짚어 보니 한숨만이 감도네요.....
이제 사십이 되니.... 인생이란 게... 어떤 것인지를 알것 같기도 하고요.....
당신과 내가 지난 시간 함께 해온 일련의 시련과 사건 사고들.... 하지만 중요한 건 당신은 늘 내 곁에 머물렀고 나 역시 그런 당신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두 아이와 비바람 피할수 있는 작은 집 한채가 전부지만... 그래도 저는 당신이 있어 행복하답니다... 당신의 쉬운 한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우리 앞으로도 행복하고 복되게
살기로 해요.....
사랑합니다...... 생신 축하드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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